Language Still Matters
AI 시대
요즘 번역기는 정말 잘 작동합니다.
유튜브도 자동 자막을 달아주고, 구글 번역으로 외국어 자료도 한글로 바로 읽을 수 있습니다.
AI가 코드를 짜주고, 해외 문서를 읽어주며, 이메일까지 대신 써줍니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언어를 배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AI가 번역해줄 텐데, 시간을 들여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생각의 창구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자극을 언어로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여 이해합니다.
언어는 이렇게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되어주며,
동시에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창구가 됩니다.
모호한 언어로만 알고 있으면, 생각도 모호한 수준에 머뭅니다.
반면, 언어가 정교해질수록 생각도 정교해집니다.
길을 걷다 꽃을 마주쳤을 때, 어떤 사람은 그냥 "꽃"이라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국"이라고, "백합"이라고, "양귀비"라고 인식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이름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인식은 다릅니다.
그냥 "꽃"이라고 하면 그저 색과 향기만 느끼고 지나가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 꽃이 자라는 계절과 장소, 그 꽃에 얽힌 이야기까지 함께 떠올립니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여줍니다.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더 풍부하게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어가 생각의 전부는 아닙니다.
언어 없이도 떠오르는 직관, 몸으로 느끼는 감각, 음악과 미술로 느끼는 세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언어가 없으면 구체화하고 전달할 수 없지만, 생각의 씨앗과 직관은 언어 이전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언어는 그 씨앗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더 깊이 탐구하고, 나누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틀을 하나 더 얻는 것이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 더 얻는 것입니다.
결국 언어가 깊어질수록 생각도 깊어지고,
언어가 정교해질수록 내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도 정교해집니다.
개발자
The hottest new programming language is English
Andrej Karpathy가 2023년에 X에 남긴 글입니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역사는 추상화의 역사입니다.
처음에는 CPU가 직접 이해하는 기계어(저수준 언어)로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고수준 언어가 등장해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에는 자연어(영어)가 "초고수준 언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는 더 이상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어로 AI를 통해 코드를 생성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많은 언어 중에 왜 영어일까요?
대부분의 AI 모델 훈련 데이터는 영어 비중이 약 80~90%에 달합니다.
이로 인해 영어로 명령할 때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문)
추가로, 개발자에게 영어가 중요한 이유는 이 글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결국 AI 시대에도 언어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세상을 깊이 있게 보고, 생각을 구체화하며,
원하는 것을 AI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를 갖추는 일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중